2025. 4. 10. 06:02ㆍ사주팔자
인다들에게 치를 떠는 사람들이 꽤 많다.
왜일까? 그 이유를 말해주려 한다.
인다들 절대다수가 하위노동자에 속해있다. 인다남, 인다녀 모두 마찬가지다.인다 특성상 실행력, 끈기, 관성보다도 관념, 생각, 말이 앞서니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하위 노동에 종사하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다들을 밑바닥 직업에서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거기서 만날 수 있는 인다들은 백이면 백 이렇게 말한다.
“저는 다른 노동자들이랑은 좀 달라요.”
즉 나는 지금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말이다.
그러면 묻고 싶다.
도대체 인다는 어디 있어야 되는 건가?
골드만삭스 회의실? 다보스포럼 단상? 로스차일드 패밀리룸?
이쯤 되면 그냥 현실 도피가 아니라, 자아 보호를 위한 허상 서사 생성기다.
문제는 이게 점점 더 허세에서 자아 정체성으로 굳어진다는 거다.
인다 본인이 특별한 줄 아는 거 그것은 착각이라기 보단 의식적인 생존 전략이다.
그렇게 생각 안 하면 인다 본인 인생이 너무 처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뭔가 될 거야~ 라는 서사를 안 만들면 자아가 붕괴한다.
말 그대로 내가 여기 있는 이유를 만들어야 살아있을 수 있는 구조다.
근데 문제는 따로 있다.
인다 지 혼자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인다는 그걸 굳이 남한테 떠벌리고 다닌다.
말해야 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다르다” 이걸 인다 혼자 되뇌는 걸로 부족하니까 지인한테 확인받으려고 한다.
그 순간 인다의 뇌는 그래 난 진짜 특별한 사람! 하고 착각하게 된다.
그걸 현실 확정이라고 한다.
이 짓은 인다사주의 전유물이다.
인성이 많다는 건 기본적으로 머리 회전은 괜찮고, 기억력 있고, 책은 좀 봤고, 지식 흡수는 잘 하는데 행동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행동할까?
말만 계속 하는 것이다.
맨날 어설픈 인문학 인용, 유튜브에서 주워들은 금융지식, 역사적 통찰같은걸 떠벌리고 다닌다.
근데 현실은 하위 노동자다.
그래놓고 본인은 나는 이런 애들하고는 달라요~라고 말하며 난 경제를 아는 노동자임 이딴 프레임으로 자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한국에서 유독 심한 이유도 있다.
한국 사회는 표현 안 하면 없는 인간 취급을 한다.
그러니까 본인이 특별한 인간이라는 걸 자꾸 말로 사회에 등록하려는 것이다.
말 안 하면 무존재니까.
거기다가 한국은 입시-취업-부동산 루트 빼면 인생이 없다.
근데 그 사다리는 점점 좁아지니까 인다들은 나는 정규 루트는 안 탔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성공할 거야라는 허상 서사에 중독된다.
이런 인다의 자위질을 들어주는 사람은 뭘까?
그 괴랄한 서사의 강제 피드백 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다와 이야기하기 괴로운 것이다.
들어주자니 빡치고 안 들어주자니 인간관계 어색해지니까.
이쯤 되면 걍 중간에서 사망이다.
인정 중독에 빠진 인다는 상대를 거울로 쓰고, 지인은 말없이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인성다자 특징은 뭘까?
자기객관화가 안되고 현실감이 없다.
하지만 근자감은 있고 서사 과잉이고 실행력은 제로다.
그리고 말이 더럽게 많다.
인다 말 들어주기만 하면 인다 자위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다는 지적 허영심이 많고 자존감 낮은데 자존심 하나만큼은 끝판대장급이다.
그래서 약간 무시라도 하면 눈빛이 돌변한다.
자기 서사 부정당하면 존재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다들이 하는 말은 절대로 맞장구치거나 들어줘선 안된다.
안 그러면 인다 허상 서사 유지하는데 내 에너지가 계속 빨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진짜 피로 쌓이고, 내가 인다보다 오히려 헌실감을 잃는 구조가 된다.
그러니까 인다사주 애들 보면 해줄만은 딱 이 말밖에 없다.
오~ 머리는 좀 되는데 왜 인생 그 지경이냐? 말만 하느라 정작 아무것도 안 해서 그런거 아니냐?
라고 하면 끝난다.
인다의 서사 허세가 시작될때 한번 물어보라.
“근데 너는 뭘 하고 있는데?” 라고 하면 십중팔구 대답 못한다.
왜냐? 서사만 있고 액션은 없기 때문이다.
그게 인다사주의 숙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