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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특징은 쇄국 정책이다.
조선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나태했다. 

이것은 인성다자의 특징이다. 

관을 추구하는 인성다자라 관설이 심한것이 조선이였다.
관성을 극복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은 인성을 추구해 쓸모없는 유교에 집착했다.
그러나 받아드릴줄 모르고 쇄국정책에 백성들에게 세금만 수탈하고 희생을 강요했다.

이는 인성이 있어도 재극인에 관다라 융통성도 없었던 것이다.

몇백년간 공자왈 맹자왈만 하다가 과거급제로 성공하고 사농공상으로 관인 제외한 나머지 천시하기 바빴다. 
그러면서 사람들 근본 근성은 매우 게을러 터진것은 인다 관설 심한 사회 그 자체다. 

그뿐 아니라 세계 유일 자국민을 노비로 부리는 미개한 모습을 보였다.
그 노비의 비율이 40%를 넘겼다.

그러다 식과 재를 추구하던 일본한테 개처럼 두드려 맞았다.
일본은 식생재관으로 관을 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게 두드려 맞은게 오히려 약이 되었다.

 


당시의 노비들은 주인의 기분에 따라 쉽게 살해당했고 여노비의 경우 주인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과였다. 

노비들은 일본에게 한국이 점령당하고 신분제가 폐지되어 비로소 겨우 해방되었던 것이다.


일본은 전국시대부터 목숨걸고 뺏고 빼앗기는 군겁쟁재 편관으로 지키는 사회에서 아래는 식상생재관으로 다스렸다.
그러다 보니 장인정신이 강하고 매우 부지런했다. 

1800년대 사회발달상을 보면 조선은 미개국에 거지였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상공이 엄청 발달한 사회였고 물자 곡식등이 풍부했다. 

서유럽과 북미는 그보다도 훨씬 발달했었고 그 과학 문명보고 나라 개방해서 근대 국가를 세우고 발달시킨게 메이지 유신이다. 

일본은 조선인을 생각만큼 억압하지 않았다. 
침략 당시의 문서를 보면 조선을 식민지가 아닌 제2의 일본으로 흡수통일하기 위한 관점으로 접근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조선인의 교육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한국에 의무 교육을 도입한 것도 일본이다.

경성 제국 대학이라는 한국 최초의 대학을 설립해주었고, 이 대학이 현재의 서울대이다. 

일본은 조선 시대의 노예들보다 훨씬 나은 대우를 한국인들에게 해 주었다던 것이다.
누군가를 성 노예로 부리지도 않았으며, 기분에 따라 죽이는 일도 전혀 없었다. 

일본의 정책상 그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일본인이 당시 한국인을 심심풀이로 죽이는 모습은 미디어에서 연출된 것이며, 반일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의 봉건제 사회 체계를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그 결과 부당한 신분제가 철폐되었고 조선의 낡은 시스템이 붕되되고 훗날 자유시장 경제체제로의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당시 사회 발달상을 보면 일본은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하고 문물도 빨리 받아들였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병폐가 잠깐 고쳐진 적이 있었다. 

근대 들어 박정희 군사정부 새마을 정신이다. 
전 국민이 식상재 정신 심고 개발을 가열차게 진행했다.

물론 잠깐 뿐이였고 현재 한국은 다시 조선시대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정체성을 말하자면 정재를 추구하는 재극인이다. 
돈이 되면 뭐든 하지만 도덕성 없고 사대주의에 계급의식이 존재하는 관살이 혼잡된 형태다.

반면 일본은 정관 추구하고 깔끔한 세련미가 있다.

한국은 본인들이 잘난 줄 알지만 영원히 일본을 따라잡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그토록 일본에게 질투를 하고 반일, 반일 하며 질투하기 바쁜 것이다.

안되는걸 아니까 열폭할 수 밖에 없다.
능력이 없는 가난뱅이들에게 한결같이 나타나는 모습은 자존심만 더럽게 강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은 일본을 따라 잡기는 커녕 눈부시게 발전중인 베트남, 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시아 중진국들에게 추격당해 그들에게 뒤쳐지는 것은 물론이고 2040년 이후에는 아프리카에도 뒤쳐질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개입해 주지 않으면 한국은 조선시대로 돌아갈 수 밖에 없고, 서서히 돌아가고 있다.
한국 자체가 거대한 인다관설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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