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와 환생은 영혼의 진동수로 결정된다

2025. 6. 11. 07:35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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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진동한다.
모든 입자는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에너지 상태로 진동하고 있다. 과학에서도 인정된 사실이다.

물질일수록 진동수가 낮고, 비물질일수록(정신, 의식) 진동수가 높다.
영혼의 진동수란 그 영혼이 어떤 감정, 생각, 의식을 주로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파장이다.

영혼의 진동수는 그 영혼이 지닌 의식의 밀도, 순도, 자각 수준을 나타낸다.

증오, 분노, 집착, 탐욕 같은 상태는 저진동이다.
공감, 직관, 무조건적 사랑, 수용, 자발성은 고진동이다.

진동수는 고정된 게 아니다. 영혼의 진동수는 변화 가능하다.
사람의 상태도 마찬가지로 아침엔 짜증, 오후엔 집중, 밤엔 감동받을 수도 있다.
지금의 감정, 의식, 에너지 상태에 따라 진동수는 순간순간 달라진다.

저진동 영혼은 분노, 집착, 피해망상, 의존, 질투, 통제욕 강함, 희생자 시점, 원망, 도피, 회피 성향이 강하다.
고진동 영혼은 평정, 수용, 직관, 인간관계는 경계하면서도 애정이 있고 창조자 시점, 통찰로 끌어올리는 성향이 강하다.

특정 사람과 있으면 괜히 편안하거나 피곤한 것은 진동수 차이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같은 사건인데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내면 파장 차이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유 없이 끌리는 장소, 사람은 진동수 공명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 진동수가 낮으면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 말에 계속 휘둘리고, 몸이 무겁고, 소리나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질투심은 끊임없이 비교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의욕은 없는데 이상하게 계속 바쁘다.

내 진동수가 높으면 어떻게 될까?
진동수가 높아지면 이전엔 짜증나던 사람을 신경쓰지 않게 된다.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의 질이 달라지고, 몸이 예민해져서 가짜 정보나 사람을 쉽게 구분하게 된다.
TV, 술자리, 관계, 자극적 콘텐츠에 흥미를 잃는다.

카르마는 진동수에 따라 설정된다.
진동수가 낮으면, 그 낮은 수준의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이끌린다.

낮은 파장은 낮은 파장을 부른다.
반대로 진동수가 높아지면, 예전의 카르마조차 의미 자체가 재구성된다.
과거의 고통도 이해의 재료로 통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동수 높이는 것이 카르마 청산의 가장 빠른 방법이다. 외적인 봉사, 기도보다 효과 빠르다.

환생은 진동수 기반의 분류 시스템이다.
환생은 랜덤이 아니다.
진동수에 따라 환생할 계, 영역, 환경이 자동 분류된다.

낮은 진동수의 영혼은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환경(폭력, 전쟁, 생존 중심 사회 등)에 태어난다.

고진동수의 영혼은 교육, 치유, 전달의 역할을 맡으며 비교적 의식 수준이 높은 환경에 투입된다.
고진동수의 영혼일수록 자기가 태어날 환경과 조건을 스스로 선택한다. 자발적 투입이다.

진동수의 총합은 영혼의 현주소다.
카르마란 과거의 진동수의 누적값이다.
환생 위치는 현재 진동수의 상태다.
다음 진화 방향은 진동수 상승 가능성에 달려 있다.

우리가 겪는 상황, 인간관계, 몸, 감정, 기억은 전부 진동수에 맞춰진 현실이다.
진동수가 올라가면 환경이 바뀌고, 관계가 정리되며, 기억의 해석조차 달라진다.
이게 진짜 변화다. 겉모습이 아니라 차원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진동수를 올리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자기 책임을 수용하고 피해자 모드에서 벗어나는 순간 진동이 확 상승한다.
억눌린 감정들(분노, 억울함)을 정면에서 느끼고 흘려보내면 상승한다.
관계 정리, 정보 과잉 차단은 불필요한 진동을 해소시킨다.
겉과 속이 다르면 진동이 깨지며 자기 기만을 멈추는 순간 상승한다.
논리보다 직감 우선할 때 파장이 정렬된다.

논리보다 직감 우선이라는 건 개념이 좀 어려운데 예를 들어 보자.

논리 : 이 직장은 연봉도 괜찮고, 안정적이니까 다녀야 해
직감 : 아무리 생각해도 숨 막히고 무기력하다

이때 논리를 따르면 사회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지만, 영혼은 말라죽는다.
직감을 따르면 불확실하지만 내 파장은 살아난다.

그럼 논리는 쓸모없는가?
아니다. 논리는 직감을 실행할 때 필요한 구현도구다.

직감이 방향을 잡고, 논리가 구체적인 루트를 짠다.

인간은 직감 -> 논리 -> 행동 순으로 살아야 진동수가 일치한다.

그런데 대부분 거꾸로 산다.

논리 -> 사회 기대치 -> 감정 억제 -> 직감 무시

이렇게 되면 자기와 어긋나 파장이 깨지고 불행해진다.
겉으론 멀쩡해도 안에서 계속 에너지가 새어나가는 느낌이 든다.

논리는 계획을 만들고 직감은 우주의 방향과 내 파장을 맞춘다.
진동수 높이려면 직감을 먼저 들어야 한다.

직감과 감정은 구분이 흐릇하다.
하지만 잘 구별해야 한다.

직감은 조용하다. 감정은 시끄럽다.
직감은 한줄기 같다. 감정은 밀물 같다.
직감은 중심에서 온다. 감정은 주변에서 폭발한다.

우리 안의 진동은 매 순간 현실을 빚고, 관계를 끌어당기고, 삶의 질을 결정한다.
모든 감정, 선택, 직감은 단지 반응이 아니라, 파장을 조율하는 신호다.

이 진실을 자각하는 순간 더 이상 현실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공명시키는 존재로 바뀌게 된다.

지금 이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물어라.
지금 내 진동은 어떤 파장을 띠고 있는가?

그리고 그 파장에 스스로 책임을 져라.
그게 깨어있는 존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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